계 19:11-21 혼인 잔치와 살육의 잔치

등록일 25-08-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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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두 손은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하나는 아버지처럼 강인하게 그려져 있지요. 렘브란트는 이 한 장면에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두 가지 성품을 담았습니다. 그 손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용서와 동시에, 흔들림 없는 공의의 깊이를 만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백마를 타고 오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의 심판의 위엄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의의 위엄은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까지 순종하심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진정한 의를 이루신 분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정사와 영적인 것들을 심판하실 것이비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신랑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함께 누리는 축복의 잔치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만들어가는 어떤 최고의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것도 반드시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공의 앞에 부서지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순결한 백성들은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인생 가운데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파멸될 것을 붙들고 살지 마십시오. 영원한 나라를 바라 보며 사십시오.